'+'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1.02.25 [하루아베] 조각글
  2. 2019.12.14 [미나코우] 겨울 조각글

[하루아베] 조각글

2021. 2. 25. 01:38 from +

하루나와 키스를 나눈 직후로 나는 그에게 선배라고 부르기를 그만뒀다. 하루나는 내게 선배 소리를 들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선배답지 못하게 이기적이고, 기분파인데다가, 귀엽지도 않다. 하루나 역시 나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남자답게 그에게 좋아한다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전했다. 하루나는 나에게 귀엽다고도, 멋있다고도, 좋아한다고도 말해준 적 없다. 부끄럽다면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고백하는 방법이 많이 있다는 걸 알텐데, 하루나와 메일을 나눠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그런 표정조차 간접적으로 보여준 적 없지만, 그런 건 대개 눈치로 아는 법이다. 하루나가 나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나는 아직 누구와도 사귀어본 적 없다. 스스로의 감정의 변화에는 눈치가 빠를 뿐이다. 그리고 내가 당당히 고백했던 것에 대해, 하루나는 대답은커녕 비겁하게 도망치기만 했다. 그런 주제에 하루나는 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키스했다.

 

나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잘만 연습하던 하루나가 대단히 열이 받은 얼굴로 타카야! 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내게 달려왔고, 몸집이 큰 하루나를 마주하게 된 나는 순간 쫄았지만 자존심을 부리느라 퉁명스레 왜요, 하고 대답했다. 하루나는 끙하더니 갑자기 내 뒷목을 잡고 입술을 부딪혔다. 나는 새파랗게 질려 이 자식이! 하고 그를 밀쳤지만 그는 끈질기게 나를 제 품에 가뒀다. 나는 그보다 키가 한 뼘 정도 작았고, 체구도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그를 떼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를 떨어뜨리려 노력하는 대신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당신 뭐하는 거야! 라고 그에게 소리쳤다. 입술을 벅벅 문지르고 바닥에 침을 확 뱉고 나서 하루나를 노려보자, 하루나는 오히려 적반하장의 말투로, 뭐야 별 거 없네, 라고 빈정거렸다. 네 고백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아. 나는 그제서야 뒤늦게 주위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내 더러운 성질에 그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하루나가 비웃든가 말든가 그를 힘껏 걷어차고 도망쳤다.

 

투수란 놈들은 원래 이렇게 다들 제멋대로인가? 라고 한탄하며 나는 하루나를 떠받드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를 투수라는 카테고리에 간단히 묶을 수는 없다. 투수라는 것들의 공통분모라곤 짜증난다는 것밖엔 없지 않은가. 하루나는 그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알기 어렵고, 짜증나는 존재다.

 

이 남자가 원래 요령이 좋지 않다는 사실-남의 입으로 들으면 기분 나쁠 것이 분명하지만, 특히 나에게는 더-은 알고 있다. 오히려 실은 굉장한 노력파라는 걸 알기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러버리는 남자가 아니기에 이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이 불쾌하다는 것이다.

 

, 타카야 잠시만! 자율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가려는 나를 불러 세운 하루나가 다시 한 번 내게 키스하려 했다. 이번엔 잘 피했지만 하루나의 싸늘한 눈빛이 내 몸을 뜨겁게 옭아맸다. 이번엔 또 뭐야? 하루나가 귀찮은 여자애 대하듯이 나를 대했다. 무시당하는 느낌.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당신 대답 들을 때까지 가까이 가지 않을 거니까.

, 그러셔. 그거 고백이었구나.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지껄인 거.

고백을 누구 허락받고 합니까?

나지 누구야. 그럼 너 앞으로도 내 공 안 받고, 나랑 어울려주지도 않고, 심지어는 내 얼굴도 안 볼 거냐? 타카야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되겠네. 코시엔 우승도 하고 말이야. 나 좋아한다면서 그렇게 말하기가 쉽네, 너.

이 쪼잔한 놈. 멱살을 잡으려다 상황이 악화될까 싶어서 가까스로 참았다. 하루나는 여전히 재수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해줄 때까지 저러고 있을 셈인가. 그러나 하루나만 고집이 센 게 아니다. 나도 부모를 닮아 고집은 꽤 센 편이다. 저쪽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이야말로 저 고집을 꺾어줄 테다.

타카야 좀 너무한다는 생각 안 들어?

제가 뭘요.

내가 너한테 손 빌려달라는 것도 아닌데. , 물론 난 너처럼 게이가 아니지만. 고등학생씩이나 됐으면서 아직 그런 거 멀리 하냐? 고작 키스나 해주면서.

...포수랑 투수는 부부나 마찬가지라는 거 너도 알지? 내가 마누라랑 화해를 해야 능률도 올라갈 거고. 공도 더 많이 던질 거고.

마지막 건 거짓말이네요. 그리고 주위에 귀여운 여자애들 많을 거 아닙니까. 선배 인기 없는 것도 아니고.

그치만 네가 내가 좋다잖아. 여자애들은 징징대서 싫어.

당사자들이 들으면 참 좋아하겠네요. 저 위하는 척은 하지 마세요. 본인이 귀찮아서 그러는 거잖아요? 그리고 전 엄밀히 따지자면 게이는 아닌데요.

- 알겠어. 타카야 말 진짜 많네!

말 많은 게 누군데.

그러고는 한다는 말이,

. 너 땀냄새 난다.”

젠장, 이 자식은 도무지 배려란 걸 모르는 놈이다. 남자 애니까 배려따윈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다. 사람을 상대할 때는 항상 교양 있는 자세를 지켜야 한다. 그게 매너란 거다. 그렇게 행동하도록 부모에게 교육 받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 몸에서 나는 불쾌한 체취를 없애느라 쩔쩔맸다. 이런 게 바로 투수란 놈들을 대처하는 나의 비굴한 생존법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나코우] 겨울 조각글  (0) 2019.12.14
Posted by nangscene :

[미나코우] 겨울 조각글

2019. 12. 14. 00:55 from +

 

미나토가 코우지를 처음 만난 건 긴자의 한 화과자점에서였다그 무렵 코우지는 허연 뒷목이 드러날 정도로 머리를 짧게 잘랐었고그날 내린 첫눈과 닮은 새하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코우지의 옆에는 파란색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미나토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두 사람은 약 삼십센치 정도 떨어져 있었으나 미나토에겐 그들이 꼭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한눈에 그들이 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짝 들떠보였던 그들은 화과자 한 세트일본주와 차 한 병씩을 사고는 손에 사이 좋게 하나씩 나눠 들고 가게를 나갔다. 미나토가 기억하는 건 항상 그 두 사람이 차에 올라타는 장면까지였고미나토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코우지는 그 당시의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때 코우지는 같이 있던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도 잘 부탁해.

 

미나토가 우연처럼 코우지를 다시 마주친 건 해가 바뀐 후 대형 백화점의 앞에서였다코우지는 놀랍게도 혼자였다. 그새 머리가 살짝 길었고 밤색 코트 속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거리는 붐볐고 신년의 훈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백화점 앞을 장식한 일루미네이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수첩을 꺼내고는 메모할 것을 찾았지만 주머니 속엔 아무것도 없었는지 미간 사이가 좁아졌다. 어느새 미나토는 자신도 모르게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타인의 일에 좀체 관여하지 않는 성격인 미나토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저괜찮으면 이거 쓰세요.

살짝 숨이 찰 정도로 뛰어온 미나토가 코우지에게 펜을 건넸다. 코우지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살짝 놀라더니 경계 어린 표정으로 미나토를 쳐다봤고 미나토는 그 얼굴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코우지는 고개를 숙이더니 펜을 받았다. 그리곤 자신의 수첩에 몇 자 적어 넣고 나서 미나토에게 펜을 다시 돌려줬다. 그 일련의 과정을 미나토는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히로, 좋아해요?”

“..?”

코우지는 미나토와의 묘한 첫 만남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의 미나토는 코우지의 물음에 엉뚱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모습이 대단히 수상쩍었고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 놀려주고 싶을 만큼 웃겼다고 했다. 그당시 한참 유행했던 종교 단체의 가입 권유라든가 여차하면 코우지는 바로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 미나토에게 갑자기 이유없는 끌림을 느꼈다. 느닷없이 펜을 내민 당돌함까진 좋았으나 그 다음이 어설펐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코우지가 보고 있던 건 형형색색의 전구가 아닌 그 뒤에서 실제로 존재한 채 빛나고 있는 자신의 스타였다고 덧붙였다. 미나토가 자신처럼 자리에 멈춰 서서 하야미 히로의 전광판을 쳐다보는 줄 알고 착각했다고.

그날 말을 먼저 건 것은 미나토였으나, 오히려 코우지에게 붙잡혀 근처의 유명한 찻집으로 끌려가 그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미나토는 하야미를 잘 몰라서 관심있는 척 하느라 힘들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때 둘의 공통 관심사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꽤 많이 좋아하는구나, 하고도 잘 알 수 있었다.

 

 

입동.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그날도 이렇게 눈이 왔었지 우산이 없었어.

“아니라니까요.

미나토가 머플러를 풀고 커튼을 활짝 젖히는 사이, 코우지가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장 봐온 음식들을 늘어놓으며 얘기했다. 눈을 좋아하는 미나토 때문에 겨울이 되어도 창문에 커튼을 쳐 놓지 않는다아직 창밖은 건조할 뿐 이렇다 할 기미가 없다. 미나토는 항구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눈이 내리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그날 눈이 왔다면 미나토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미나토는 인생이라는 악보에서 도돌이표를 마주친 듯 그날의 이야기를 한다어쩌면 그 작은 기호를 애타게 찾고 있는지 모른다. 함께 산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미나토는 코우지만 보면 종종 불안함을 느끼곤 했다코우지가 처음 함께 맞는 겨울이 지나고 나면 미나토를 떠나겠다고 줄곧 말해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금 첫 번째 겨울을 나고 있다.

“그나저나. 얼른 꽃구경 가고 싶어. 도시락도 싸고.

미나토의 분주하던 손이 멈춘다마치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태연한 코우지의 목소리가 꿈에서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무섭다그저 미나토는 코우지가 내년에도 잘 부탁해라고 말하면서 연인을 버렸던 것처럼 제게도 실은 계속 함께 있을 거라고 말해 주길 기대했다.

코우지와 자신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게 된 건진 아직도 잘 모르겠다그가 변덕쟁이라서? 단지 충동적으로 말을 걸었을 뿐인데.

“곧 비로 바뀔 것 같은 눈이네요.

모른 척을 하는 수밖에. 핫초코 마실래코우지에게서 생뚱맞은 대답이 돌아온다. 저녁 먹고요미나토도 코우지를 흉내내 듯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코우지에게로 다가갔다. 코우지와 닮아가는 것을 부쩍 느낀다. 그리고 코우지를 약하게 껴안는다. 맨 살에 닿은 코우지의 스웨터가 까슬까슬했다코우지가 미나토의 팔을 부드럽게 품는다이런 식으로 그를 대하는 법 밖에 알지 못한다.

 

미나토와 코우지가 동거를 결정하고서 시간이 조금 지난 어느 날미나토는 자신이 코우지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심지어 직업조차도 코우지에게 들은 적이 없었다. 코우지는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냐? 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그에 대해서 들려주는 일은 또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코우지의 외출 시간은 그의 성격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했다어떤 주는 내내 집에 있다가또 어떤 주에는 주말에 갑자기 일을 하고 싶다며 급히 나갔다그럼에도 생활비는 반반씩 착실히 내고 있으니 미나토는 집안에 어느 정도 돈이 있거나 모아둔 돈이 있는 백수이거니 어렴풋이 짐작했을 뿐이었다.

오늘 가면 언제 와요?

하지만 이젠 안다코우지가 가끔 과거의 연인이자스타이자하야미 히로에게 간다는 것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의 일이 하야미와 크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코우지가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운 때에 청소를 하러 코우지의 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코우지의 방에 먼지만큼이나 쌓여 있던 게 그의 작곡 노트였다코우지는 하야미의 작곡가이자 연인으로서 성실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그후로 미나토는 그의 방에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음악 방송 채널만 틀어 놓아도 볼 수 있는 게 그의 이름이다작곡 미하마 코우지매우 좋은 곡이라며 아이처럼 웃는 하야미의 얼굴을 텔레비전 너머로 보며 생각한다. 코우지가 하야미를 떠올리며 작곡한 노래의 멜로디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미나토는 깨달았다그 겨울의 연인은 아직 사랑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기다릴 거야? 먼저 자.

“늦으면요.

“오늘은 그냥 작업실에서 잘게. 내일 보자.

“…그래요. 조심해요.

 

처음에는 모른 척 하려던 게 아니었다. 코우지에게 그와는 확실히 끝난 거냐고 묻고 싶었다. 행복하게 웃던 두 사람이 다신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사라진 게 맞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미나토가 그러지 못한 건 과연 코우지를 추궁할 자격이 내게 있는 걸까라는 의심이 들어서였다. 무엇보다 추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끼어든 건 미나토 자신이다. 알고 있다. 멋진 연인을 잊지 못한 채 적당해 보이는 새 애인에게로 도망쳐버린 코우지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알고 싶지 않은 진실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런 미나토의 마음을 눈치챈 건지 코우지 쪽에서 먼저 말해줬다.

미나토. 나 사실은 히로 노래 만들어.”

“……알고 있었어요. 말 못해서 미안해요.”

“미나토가 히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건?”

그것도.”

미나토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코우지가 소파 위에서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 미나토는 어쩐지 코우지에게 취조 받는 기분이 되어 저절로 두 손을 맞잡게 되었다. 지금까지 미나토는 두 사람이 예전에 사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잘 숨겨온 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우지는 한참을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을 했다.

“…난 어른 답지 못한 것 같아.”

그건 미나토에게 이해받지 못할 발언이었지만, 미나토는 그에 뭐라고 대꾸하려다 왠지 복잡해 보이는 코우지의 얼굴을 보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날이 좀 따뜻해 진 것 같지?

그건 일종의 신호였다.

미나토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직감했다. 코우지와 두 눈이 마주쳤을 때 미나토는 이것이 우리의 끝이구나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며 코우지를 마지막으로 안아주기 위해 팔을 벌렸다. 오늘따라 코우지가 더욱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니 잠자코 코우지를 잘 보내줘야지, 라고 다짐했다.

말 많은 남자는 딱 질색이라고 생각했는데,”

“…”

널 보니까 말 없는 남자도 만만치 않구나.”

그렇게 말하고서 코우지는 몸을 틀어 창밖을 봤다. 그리고는 미나토를 향해 웃어보였다.

오늘은 눈이 오니까 내일 가야겠다.”

코우지의 말에 미나토는 코우지가 보고 있는 곳을 쳐다봤다. 거짓말이 아니라 창문 너머에 조금씩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시간쯤 뒤면 더욱 거세질 것이다. 미나토는 얇은 컨버스화를 신은 코우지의 발을 내려다봤다.

그래도 되지? 코우지가 가디건을 챙기다 말고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누웠다. 미나토는 약간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토가 얇은 차림의 코우지에게 덮어주려 담요를 가져왔고, 코우지는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그 순간 미나토는 어른스러워보였던 코우지가 처음으로 어린 애 같다고 생각했다.

고마워요.”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온몸이 차가워진 코우지가 목욕을 하러 욕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둘은 여기서 한발자국도 떠나지 않겠다는 듯 자리를 지켰다. 코우지가 씻는 소리가 들리고 미나토도 평소처럼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이대로 코우지가 나가면 그가 돌아오건 돌아오지 않건 미나토는 군말 않고 짐을 싸기 시작할 것이다. 마치 자신은 그곳에 없었다는 듯이 흔적을 지워나갈 것이고 그가 언제든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도록 새 보금자리를 준비해두고 기다릴 것이다. 코우지는 미나토를 다시 찾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반드시 눈이 온다는 어떤 순리처럼. 그날이 오면 미나토는 코우지를 온 힘을 다해 반겨줄 것이다.

 

 

 


킹프리

 

타카하시 미나토x미하마 코우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아베] 조각글  (0) 2021.02.25
Posted by nangscene :